두 암소를 통해 바라보는 사명의식
성경에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도 하지만,
때론 한 낮 미물밖에 되지 않은 짐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시고 알게 하심으로
인간인 우리에게 더욱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줍니다.
본문 열왕기상 6장에서도 한낮 미물인 암소 두 마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사명을 돌아보게 하시고 사명의식을 고취시켜 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언약궤(법궤)를 가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다가
언약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패전을 합니다. 전쟁에서 패한 원인은 하나님이 아닌
언약궤만을 믿었던 그들의 맹목적이고 부적처럼 여긴 잘못된 믿음이 전쟁에서 패하며
언약궤까지 빼앗기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빼앗긴 언약궤를 다시금 이스라엘로 가져오기 위하여 블레셋에 재앙을 내림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옮기게 하는데 그때 송아지를 낳아 젖 나고 있는 암소 두 마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레에 실고 오게 합니다.
이 두 암소는 이제 막 새끼 송아지를 낳아서 송아지를 돌보아야 하는 떨어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날마다 새끼 송아지에게 젖을 물려야 하고 어미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과 환경을 뒤로하고 어미 암소 두 마리를 취하여 새끼 송아지를 떨쳐놓고 벧세메스로 가게 합니다.
가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12절에 울면서 벧세메스까지 갔다라고 말씀합니다.
한낮 미물인 두 암소에게도 하나님께서 사명을 짊어주니까 그 발걸음에 하나님의 영예와 하나님의
이름 영광이 달려있음을 알고 사명을 다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짊어지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까지 간 것입니다.
그리고 두 암소들은 벧세메스까지 가서 대접을 받거나 환영을 받지도 못하고 곧바로 죽임을 당하며
하나님께 번제로 받쳐집니다. (14절)
사명은 이처럼 환경과 상황에 메이지 않고 나에게 달린 하나님의 영애와 그 이름 영광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이며
나를 알아주거나 대접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사시고 사명을 감당하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뒤로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울면서 갔던
그 미물들처럼 나에게 달려있는 사명의식을 생각보며 끝까지 정진하시기를 축복합니다.